2016년 6월 5일 일요일

<유럽 소도시 시리즈 3>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실제 모델 마을, 이탈리아 치비타 (Civita di Bagnoregio)

"천공의 성, 라퓨타" 라는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내놓은 첫 번째 애니메이션으로 지금 세대들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일본 에니메이션 광팬이거나 혹은 아이들을 가진 부모라면 한번쯤 봤음직한 영화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만의 특색이 담긴 유려한 색체와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탓에 아이들을 위해 틀었다가도 주저 앉아 같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봤던 곳들을 실제 에니메이션 배경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여행을 하다 보면 그가 들려갔다고 전해지는 곳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특히 이번에 소개하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치비타 (Civita)는 위에서 소개한 천공의 성, 라퓨타 라는 에니메이션의 영감을 준 곳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구질 구질한 설명보다는 가 보면 안다. 한마디로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만큼 기묘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지 한 가운데 우뚝 선 성으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다리 하나 뿐이다. 분지에 안개라도 끼는 순간을 보기라도 한다면 마치 구름 위에 성이 우뚝 선 것같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에 하늘에 떠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중세 시대 모습 그대로 멈춰 선, 치비타. 신비롭다.
사실 이 곳, 치비타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로마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 신화를 보면 로마는 기원전 5세기 무렵, 터키 트로이에 모여 살던 그리스 민족 중의 일부가 전쟁에 패하면서 로마 지역으로 몰려 오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말이다. 근데 사실 초기 로마인들이 로마 지방으로 몰려 오기 이전에도 지금의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에트루리아 라고 불리던 민족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주로 산간 지역에 둥지를 틀고 거주하던 이들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건축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기원 전 5세기부터 기원 전 3세기까지 이탈리아 중부를 놓고 패권 다툼을 로마인들과 벌였는데 결국 로마인들이 승리하면서 에트루리아 인들은 자연스럽게 로마 문화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건축술이 워낙 뛰어난 탓에 초기 로마 문명에 건축물들은 거의 에트루리아 인들의 노고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인들은 건축에 뛰어난 자질을 보인 반면에 성격적으로 상당히 폐쇄적이고 방어적이었던 탓에 그들이 주로 자리 잡은 도시의 위치를 보면 방어가 용이하고 다른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고립된 산 정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치비타이고 또 다른 곳은 오르비에또 이다. 오르비에또는 치비타 보다는 휠씬 크고 사람들의 거주도 많은 도시로 지금도 번성 중인데 나중에 한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니 지금은 치비타에 집중하자.  


전성기였을 당시에는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거주했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로마에서부터 140 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로마에만 있기엔 무료하다고 생각된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데 일단 이곳, 치비타를 가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한 방법은 로마에서 근교 투어를 가는 방법, 혹은 시외 버스를 타고 오르비에또 까지 와서 버스를 갈아 타고 가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선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기에는 버스 나 기차 시간대에 맞추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슨 교통 수단을 이용하던지 간에 치비타만 본다 하더라도 반나절 이상, 오르비에또와 함께 돌아 본다면 1박 정도는 생각을 하고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치비타에 도착하면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위의 사진에 있는 다리가 유일하다. 1965년에 건설된 다리를 건너기 전에 통행세로 1.5 유로를 내야 한다. 그리고 건너기 시작! 우리에겐 흔히 천공의 성, 라퓨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유럽인들은 이곳을  "죽음으로가는 마을(il paese che muore)" 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지금 현재도 풍화 작용으로 인해 마을이 점차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치비타를 비롯한 인근 지형의 토양은 화산에 영향을 받은 응회암인 까닭에 화천 침식 작용이 심하게 이뤄져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사실 힘들게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 가 봐도 마을이라 하기에는 심하게 작다. 집은 30~40 여개가 남아 있지만 실제로 운영을 하거나 사용을 하는 것은 3~4개의 레스토랑과 작은 교회 하나, 기념품 샵과 게스트 하우스 정도이다. 사실 1990년 대 이후 워낙 심하게 무너져 내리는 마을 조건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마을 주민 전체를 이주시켜 버린 까닭에 지금 현재 상주 거주인은 불과 4 가구 라고 한다. 둘러 보면 멀쩡한 집 같아 보이지만 가든의 한 구석은 절벽 저 너머로 내려 앉아 버리기도 하고 어떤 집들은  집의 절반 정도가 뼈대만 남아 있다. 
다리의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고 중간에 불어 오는 바람은 살벌하다.
  

힘겹게 올라 선 성 입구에서 사진 한장찍!

그러니 안에서 만나는 인원들은 거의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이제는 페허처럼 빈 집과 그 빈집들 사이로 배회하는 관광객들이 마을의 낮 분위기를 살려 놓을 뿐이다. 이리 저리 돌아 보고 있으면 마을에 거주하는 하던 이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은 곳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로마 시대부터 사용된 와인 저장소들이 있다. 역사 이야기로 돌아 가서 사실 로마인들은 절벽 위에 세운 성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에트루리아인들에 인해 많은 고생을 했지만 막상 정복하고 나니 고립된 지역에 나홀로 사는 걸 좋아하는 에트루리아 인과는 달리 넓은 평원에 소통을 중시하던 로마인들에게 그들의 성이나 땅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고 번성하던 시기의 에트루리아 인들의 성은 그저 와인이나 저장하던 저장소의 구실을 하는 촌마을로 로마인들의 관심 밖에 머물다가 다시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해적들의 등쌀에 시큐리티가 중요해지던 중세 시대에 들어 서서야 다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민속촌 같은 구실을 한다고나 할까

마을 광장에 있는 소 규모 성당도 그닥 볼거리가 있진 않다.

관광객들을 위한 레스토랑도 점심 장사만 한다.

주변을 아우러 볼 수 있는 전경은 장관이다.

몇 가구 살지 않은 마을은 죽어 가는 마을이라는 별칭이 딱! 이다.

시간마저 숨죽여 이 마을의 흥망 성쉬를 아쉬워 한다.

주인 없는 길 고양이들이 만이 자유롭게 이 마을을 지킨다.

존재 하는 모든 것에는 삶과 죽음이 있음을 이 도시가 단적으로 보여 준다. 2500 여년 전에는 이탈리아 중부를 지배했고 그 후에도 많은 이들의 삶을 지켜 줬던, 이 도시는 이제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가 스러져 간다고 해도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생명이 이 도시의 잔재 위에 꽃을 피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니 언제 이 도시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는 그 길이 무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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