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8일 일요일

<유럽 소도시 시리즈 2> 중세에 갇힌 도시 프랑스 프로뱅 (Provins) -1

프랑스 파리는 유럽 교통의 요지인 까닭에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든지 여행 코스를 잡아 나가기가 쉽다. 게다가 파리 라는 도시 자체가 마법을 가진 도시인지라 파리에서만 한 두어달 머물면서 도시 탐험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파리 혹은 파리를 중심으로 멀리 퍼져 나가는 도시로의 여행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파리 근교 볼거리는 잘 안알려져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프로뱅(Provins). 이곳은 파리에서 자동차로 약 두어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리 근교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그닥 많은 정보가 없다. 하지만 이 도시의 내공은 깊다. 2001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가 될 정도이다. 파리가 세련된 모던 도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유럽의 다른 도시들이 크고 작은 변화를 가졌다면 이 프로뱅은 중세 즉 11~15세기의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프랑스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유럽 대개의 마을이 그러하듯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눠진다. 구별은 쉽다. 대부분의 볼거리를 간직한 구시가지는 두껍고 우직해 보이는 성벽과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구시가지로 들어 가기 위해선 성벽 외곽에 위치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 가야 한다. 사실 이 점이 좀 재밋는 부분인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바로 마을 관광 안내소와 기념품 샵이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마을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고 걸어 들어 가면 성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입구에서 공연 티켓을 파는 이들이 중세 복장을 파고 티켓을 판다. 마치 테마 파크 라도 온 듯하다. 공연은 주말이나 휴일에 보통 서로 다른 주제로 3 가지 정도서로 다른 시간대에 하는데 부지런만 떨면 다 볼 수 있다. (한가지 팁을 준다면 공연보기는 강력 추천! 이다. 공연료 아까워 하지 말고 꼭 보자.) 아무튼 입구에서 공연 시간과 예매를 하고 나면 일단 마을 안으로 입장하자.

기념품 샵도 중세 그대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고적이다
금방이라도 중세인이 걸어 나올 듯한 분위기다
차만 없으면 12~3세기 마을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만 하다

성 입구를 지나는 순간, 21세기에서 14세기의 마을로 들어선다. 이끼가 잔뜩 깐 기와를 얹은 지붕과 중간 중간 붕괴된 돌담길 그 사이를 지키고 선 오래된 나무 창틀을 가진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다. 그리고 그 앞을 중세 옷을 입은 여인네가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묘한 기분이다. 이 프로뱅은 사실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스페인과 영국으로 가는 무역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무역의 중심지로써의 수많은 이득을 얻어 왔던 도시였다. 특히 중세 시대 가장 큰 무역 아이템이었던 양모를 장악함으로서 주변 마을들을 제치고 제 1의 중계 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 서면 그런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작은 박물관이 있다. 지상 1층과 지하층으로 꾸며진 이 곳에 들러 보면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과 일하는 방식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교역 도시 답게 금융을 취급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다.

두무질한 가죽을 손질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작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 그나마 영어가 통하는 박물관 아가씨에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냐고 물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는지 파리와는 달리 영어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놀랍게도 구시가지 반대편에 가면 마을 밑을 통과하는 인공 동굴이 있는데 언더그라운드 투어를 통해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굴은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들이 혁명의 피바람을 피해 숨어 있기도 하는 등 숨은 뒷얘기가 엄청나다고 했다. 하도 설레발을 치며 must go 라고 하기래 서둘러 그곳으로 향한다. 비밀 동굴 입구가 있다는 건물의 지하실에 도착해 보니 이미 십 여명의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말을 듣고 있다. 동굴의 길이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구불 구불 얼켜 있으며 아직도 전체 지도는 완성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미스터리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가이드의 뒤를 자칫 놓칠 경우 동굴 안에서 길을 잃고 실종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투어는 동굴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면서 동굴 벽면에 다양하게 새겨진 그림이나 글씨 등을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듣는 식이다. 다행히 나를 안내한 가이드는 완벽하진 않지만 제법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이여서 프랑스어로 설명 후 짬짬히 영어로 다시 설명해 주곤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초창기에는 의대생들이 시체 해부를 비밀리에 해보고자 이 동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혁명기를 거치면서는 파리에서 광란에 휩싸인 혁명군들을 피해 프랑스 귀족들이 한동안 숨어 있기도 했고 2차 대전 당시엔 레지스탕스가 이용하고 때론 프리메이슨이 비밀 결사 의식을 치루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며 약 1시간 가량 그의 뒤쫓다 위로 올라 오면 들어 갔던 건물 맞은 편 건물로 나오게 된다.


1789 라는 숫자가 보이듯 프랑스 혁명 당시 누군가가 낙서해 놨다.
루이 16세기를 그린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둑컴컴한 동굴을 약 1시간 가량 돌다 밝은 햇빛 아래 서니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듯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기막힌 프로뱅의 역사는 아직 햇빛 아래 서지 않았다. "육상의 베니스"로 불리며 유럽 전체의 부를 거머쥘 것만 같던 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허무한 마을로 쪼그라들었는지 아직 우린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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