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일 목요일

<유럽 소도시 시리즈 2> 중세에 갇힌 도시 프랑스 프로뱅 (Provins) -2


프로뱅이라는 도시를 돌아 보고 있으면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든다. 중세인 듯 중세 아닌 중세 같은 도시. 바로 그런 느낌이다. 구시가지 마을 외곽 관광 안내소부터 마을 중심부까지 운행중인 코끼리 열차를 보고 있으면 테마 파크 같고 성으로 들어 가는 입구에서 공연 티켓을 파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중세 시대로 점프해 들어 온 느낌이다.  번화한 듯 북적거리는 광장과 그 광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한적한 모습의 마을의 맨 낯은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과연 이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중세시대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샹파뉴 백작 가문의 영지였던 이곳은 지리적 요충지였단 까닭에 마을 단위의 무역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9세기 무렵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상업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정치적, 경제적 야망을 가졌던 샹파뉴 백작 가문의 의도가 합쳐져 자연발생적으로 커나가던 시장은 일년에 한번 거대한 무역 엑스포를 열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유럽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장점 덕에 유럽 각지와 동방에서 엄청난 수의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금융업 역시 발달했다. 무역 엑스포는 처음에 일년에 한번 열흘 정도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기간도 길어지면서 프로뱅에 머무는 상인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유흥을 위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예술, 문화 활동이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바로 이곳, 프로뱅에서 매 주말 열리는 공연들이다. 하지만 사실 처음에 마을의 규모를 봤을 땐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중세 풍의 옷을 입고 간단한 연극이나 말타고 벌이는 가짜 마상쇼 정도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쇼를 보게 되면 "아니 이런 공연이 왜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지?" 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상당한 규모와 퀄러티를 자랑한다. 그 중 하나가 새 쇼! 맹금류를 포함한 다양한 새들을 훈련시킨 모습을 보여 주는데 중세 시대에 건축된 야외 공연장에서 벌이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공연이 끝나면 새들을 직접 만져 볼수도 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다양한 새 공연을 볼 수 있다.
생각보다는 규모한 큰 공연이다.

중세 복장을 한 공연자.

공연은 아쉽게도 프랑스어로만 진행된다.
   
또 다른 공연은 중세하면 떠오르는 기사와 공주의 로맨스 그리고 악당과의 마상 결투 등의 내용이 담긴 야외 연극! 이다. 이 공연 역시 프랑스어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내용을 디테일하게 알 순 없지만 스턴트에 가까운 결투 장면과 악당과의 대결 그리고 마지막에 이뤄지는 해피엔딩 등은 굳이 설명없이 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생각보다 크고 잘 꾸며진 야외 무대와 배우들의 헌신적인 모습 그리고 실제 검을 사용한 칼싸움 등을 보고 있으면 엄청난 금액을 주고 보는 라스베이거스의 쇼보다도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세를 대표하는 아이콘, 기사

마상 결투 전의 기사 등장! 

악당을 물리치고 청혼하는 기사, 공연의 해피엔딩 장면

자! 이제 대충 눈요기 거리인 공연을 봤다면 다시 마을을 마저 구경하기로 하자. 마을의 구경 거리 혹은 랜드 마크는 두 개의 거대한 석조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카이사르의 탑(Tour de Cesar) 라 불리는 15미터 높이의 3층 석탑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생 키리아스 대성당 두 곳이다. 그중 먼저 마을 어느 곳에서도 관찰이 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카이사르의 탑에 이끌려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탑은 사실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안으로 들어 가면 텅빈 공간에 불과하다. 이리 저리 돌아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꼭대기 층에 다다르게 되는데 주변을 조망하기 좋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다를 것이 없다. 왜 이런 구조물을 짓게 되었을까? 도시를 지키는 구조물도 아니고 백작의 거처를 만든 것도 아니고 잠시 잠깐 궁금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이 탑은 기능 그대로 평원 너머에서 올지도 모르는 침략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그 기능에 비해 너무도 거대한 구조가 왠지 허세스러운 그 당시의 중세인들을 머리속에 그려게 한다. 그 카이사르 탑 건너편에는 마을 규모에 비해 너무도 거대한 생 키리아스 대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 역시 왠만한 중세 다른 도시의 성당들보다도 더 큰 규모로 자리잡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데 비해 왠지 허술함이 곳곳에 느껴진다. 중세 교회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들어가야 할 자리는 다 벽돌로 막혀 있고 튼튼한 기초 골조에 비해 벽 외관을 장식해야 할 다양한 부조물들이 없다. 이 역시 왤까?
이유는 단순하다. 한참 번성을 누릴 당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탑과 성당 터를 자리잡고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번성은 당시 프로뱅 사람들이 적응하기도 전에 급속도로 사그러져 갔고 그러다 보니 건축물의 마감을 책임져야 할 재정이 파탄나면서 본의아니게 용두사미 꼴로 건축물들이 남게 된 것이다.  이유를 알고 나니 어이가 없다. 이렇게 한 도시의 번성과 쇠락이 급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프로뱅의 마을 길은 11세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카이사르의 탑은 마을 어디서나 보인다.



일명 세자르 탑이라고도 불리는 카이사르의 탑은 원뿔형 탑으로도 유명하다.
생 키리아스 대성당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뒷처리가 안된 미완성의 교회로 남아 있다. 

그럼 이렇게 도시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된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욕심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로뱅이 제일 먼저 주변 마을보다 무역 도시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박람회 때문이었다. 동서양에서 몰려 온 상인들이 거래를 하기 쉽게 하기 위해 근대적 개념의 박람회를 열었고 상인들을 위한 예술, 공연 등도 벌이면서 그런 것들이 도시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욕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박람회 기간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주변의 다른 도시들도 프로뱅을 흉내낸 박람회를 따라 열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게다가 때마침 해상무역로가 발견되면서 육로를 통한 무역로의 중요성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무리한 투자를 하던 프로뱅은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불과 몇 십년만에  말이다. 짓고 있던 대성당을 마무리짓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웃기면서도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는다.

돌아 오는 길에 만난 풍광! 프로뱅을 닮아 있다. 

Anyway, 프로뱅은 한번쯤 가볼만한 도시이다. 재미와 역사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의미깊은 도시이다. 유럽을 쇼핑과 교회 탐방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보다 깊은 사고를 원한다면 프로뱅에 가보자.

프로뱅의 공식 영어 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http://www.provins.net/fr/english-vers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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